한국 기독교 역사 100선
1. 기독교, 한국에 살다
이 땅에 첫 서양식 근대학교(배재학당)와 여학교(이화학당), 의료기관(제중원)을 연 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한글은 기독교의 찬송가와 성경을 만나 400년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선교사들이 축첩을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라’는 일곱째 계명을 어긴 것으로 규정하면서 조선시대 내내 억압된 삶을 살았던 여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겨줬다. 신분제를 철폐하게 만든 것도 기독교였다. 1903년 창립된 YMCA는 야구·배구·축구·농구 등 서양의 스포츠를 가르쳤다. 기독교는 서양의 음악·건축·미술을 한국에 소개했다.
130년 전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개신교)는 숱한 ‘한국 최초’를 기록하며 우리나라 근대화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한국 기독교 역사 100장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독교, 한국에 살다>(사진)를 출간했다. 이 책은 NCCK가 근현대 기독교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추진 중인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기획됐다.
집필진은 기독교의 진보·보수 진영을 아우르는 교회사가 11명으로 구성됐다. 임희국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가 집필위원장을 맡아 지난해 5월부터 주제 선정과 집필작업을 진행했다. 교육, 의료, 종교, 여성, 문화, 민족·민중의 큰 주제 아래 세부 항목 100개를 추려냈다. 시기별로는 1919년 이전과 1919∼1945년, 1945년 해방 이후로 나누었다.
2. 한국교회 처음 예배당
구본선 지음/장석철 사진/홍성사 펴냄/17,000원
우리나라엔 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교회가 5백 곳이 넘는다. 그중 옛 모습 그대로의 예배당이 남아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서른 곳도 채 되지 않아 이 한 권의 책 속에 다 담겼다.(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한국 교회의 1세대 예배당 24곳의 역사를 글과 사진으로 엮어낸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다니며 취재한, 교회마다의 고유한 역사와 신앙이 담겨 있다.
“역사가 오랜 교회에 가면 보물찾기에 열중하게 된다.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기도상(祈禱床)이다. 1916년 트롤로프 주교가 내려올 때 서울 교인들이 만들어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로 버팀목에는 ‘경성성공회 구주강생 1916년’이라 쓰여 있다.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 신부의 부인 현재인 사모가 1973년에 그린 성화를 안 보고 갈 수 없다. 성자 마르틴을 그린 것이다.”(136~137쪽)
성자 마르틴은 음성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지나가는 거지에게 자신의 망토 반을 잘라주었다는 4세기 프랑스 주교다. 예부터 충북 음성은 가난한 동네다. 성전을 지을 능력이 없던 교인들은 ‘부자 현씨’ 집안에서 집을 새로 짓는다면서 헐어 버린 집의 목재를 가져와 성전을 지었다. 음성에 있는 성공회 예배당 중 세 곳이 기독교 문화재이나, 이 교회는 헌 집을 뜯어다 지었기 때문에 문화재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단다. 고유의 역사, 무형의 역사를 보지 못한 탓이다.
서울 승동교회도 기둥이 전혀 없이 지어진 예배당을 지켜내고 있다. 세월의 무게 앞에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붕괴의 위험이 있어도 꿋꿋이 교회당을 지켜가고 있다. 예배당은 곧 교회 공동체가 간직하고픈 고유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낡은 건물을 허물고, 크고 웅장한 교회 짓기를 즐기는 이유는 어쩌면 지키고픈 추억이 없어서는 아닐까.
《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은, 언제 어떻게 헐리게 될지 모를 교회의 모습을 담았기에 더욱 의미 있는 책이다. 부록에는 이들 교회의 주소와 관련 정보가 실렸다. 직접 방문해서 신앙 선배들의 ‘처음 믿음’들을 온몸으로 느끼라는 배려일 것이다.
“역사가 오랜 교회에 가면 보물찾기에 열중하게 된다.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기도상(祈禱床)이다. 1916년 트롤로프 주교가 내려올 때 서울 교인들이 만들어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로 버팀목에는 ‘경성성공회 구주강생 1916년’이라 쓰여 있다.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 신부의 부인 현재인 사모가 1973년에 그린 성화를 안 보고 갈 수 없다. 성자 마르틴을 그린 것이다.”(136~137쪽)
성자 마르틴은 음성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지나가는 거지에게 자신의 망토 반을 잘라주었다는 4세기 프랑스 주교다. 예부터 충북 음성은 가난한 동네다. 성전을 지을 능력이 없던 교인들은 ‘부자 현씨’ 집안에서 집을 새로 짓는다면서 헐어 버린 집의 목재를 가져와 성전을 지었다. 음성에 있는 성공회 예배당 중 세 곳이 기독교 문화재이나, 이 교회는 헌 집을 뜯어다 지었기 때문에 문화재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단다. 고유의 역사, 무형의 역사를 보지 못한 탓이다.
서울 승동교회도 기둥이 전혀 없이 지어진 예배당을 지켜내고 있다. 세월의 무게 앞에 곳곳에 균열이 생기고, 붕괴의 위험이 있어도 꿋꿋이 교회당을 지켜가고 있다. 예배당은 곧 교회 공동체가 간직하고픈 고유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낡은 건물을 허물고, 크고 웅장한 교회 짓기를 즐기는 이유는 어쩌면 지키고픈 추억이 없어서는 아닐까.
《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은, 언제 어떻게 헐리게 될지 모를 교회의 모습을 담았기에 더욱 의미 있는 책이다. 부록에는 이들 교회의 주소와 관련 정보가 실렸다. 직접 방문해서 신앙 선배들의 ‘처음 믿음’들을 온몸으로 느끼라는 배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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